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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무(李枝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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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무백(茂伯)
호(號)수암(壽菴)
생년1604(선조 37)
졸년1678(숙종 4)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의(全義)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직경(李直卿)
조부이종훈(李從訓)
증조부이준민(李俊民)
외조부이우(李佑)

[상세내용]

이지무(李枝茂)
1604년(선조 37)∼1678년(숙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무백(茂伯), 호는 수암(壽菴). 좌참찬 이준민(李俊民)의 증손으로, 조부는 이종훈(李從訓)이고, 부친은 이직경(李直卿)이며, 모친은 이우(李佑)의 딸이다.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4년(인조 22)에 정언(正言)사서(司書)를 지냈다. 1649년(인조 27)에는 세자가 심양으로 갈 때 노모 봉양을 이유로 세자 호송을 거부하였다가, 인조에 의해 미움을 받아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1660년(효종 1)에는 장령(掌令)에 제수(除授)되었다. 1655년(효종 6)에는 장령필선(弼善)을 역임하다가, 서장관(書狀官)으로서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청나라에 다녀왔는데, 정사(正使)금림군(錦林君) 이개윤(李愷胤)이었고 부사(副使)이행선(李行善)이었다.

귀국 후에는 금림군청나라에 체류하고 있을 때에,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정문(呈文)을 작성하여 딸의 소환을 청국의 조정에 주청한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는 이에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당한 뒤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장령(掌令)정언을 지냈고, 1662년(현종 3)에는 장령을 역임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장령헌납(獻納)을 지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