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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黃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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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유(子由)
호(號)만랑(漫浪)
생년1604(선조 37)
졸년1656(효종 7)
시대조선중기
본관창원(昌原)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저서『만랑집』

[상세내용]

황호(黃㦿)
1604년(선조 37)∼1656년(효종 7).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자유(子由), 호는 만랑(漫浪).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상세히 전하는 문헌이 없다.

약관에 대과(大科)에 등제하여 주서가 되었다가 1625년(인조 3)부터 여러 차례 직언으로 파직되는 등 관운이 순탄하지 않았다.

1637년 통신사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같은해 장령이 되었다.

1640년 부수찬, 1641년 교리, 1645년 2월 영남어사영남 지방을 시찰하였고, 4월에 장령, 5월에 사간이 되었으며, 1648년 대사성이 되고 곧 대사간이 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김자점(金自點)과 연루되었다 하여 참소를 입고 1650년 파출되었으나 다시 대사성이 되고, 사은사(謝恩使) 이시백(李時白)부사연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660년(현종 1)에 신원(伸寃)되었다. 남인계열에 속하였던 인물로 추정되며, 그의 문재(文才)는 당대의 신진 중에서 발군의 측면이 있었고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고 한다.

저서로는 『만랑집』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漫浪集

[집필자]

곽신환(郭信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