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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립(許東岦)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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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진백(震伯)
호(號)연당(蓮塘)
생년1601(선조 34)
졸년1662(현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김해(金海)
활동분야관리

[상세내용]

허동립(許東岦)
1601년(선조 34)~1662년(현종 3년). 조선 중기 관리. 자는 진백(震伯)이고, 호는 연당(蓮塘)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진주(晉州)이다.

증조부는 허유(許裕)이고, 조부는 허국주(許國柱)이며, 부친은 허감(許玵)이다. 외조부는 재령이씨(載寧李氏) 진사(進士) 이희익(李喜益)이고, 처부는 함안이씨(咸安李氏) 군수(郡守) 이응성(李應星)이다(주1)
가계
고전번역총서 『갈암집』 3권의 허동립 신도비 "공의 휘(諱)는 동립(東岦), 자는 진백(震伯), 성은 허씨(許氏)이며 보계(譜系)는 분성(盆城)에서 나왔으니.....증조 휘 유(裕)는 부호군(副護軍) 증(贈)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이고 조부 휘 국주(國柱)...부친 휘 감(玵)은 군자감정(軍資監正) 증호조참판이다. 모친 재령이씨(載寧李氏)는 진사 희익(喜益)의 따님이다.....부인 이씨는 본관이 파산(巴山)이며, 군수 응성(應星)의 따님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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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였고, 관직은 경상지역의 지방을 두루 역임하고, 관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오위도총부총관(五衛都摠副摠管)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에 공지수(孔枝秀)라는 인물이 조선으로 귀순해왔다. 청(淸)나라에서 송환을 요구하였으나, 공자의 후손인 그를 숨겨주었다. 청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한때 관직에서 체직되었다. 1649년(인조 27) 오위도총부총관(五衛都摠副摠管)에 제수되었다.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과 교분이 있었다.

자녀는 3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허서(許曙)인데 통덕랑(通德郞)이고, 둘째는 허성(許晟)인데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장연부사(長淵府使)가 되었고, 막내는 허면(許冕)인데 통덕랑이다. 서출(庶出)로 아들 무과 허승(許昇), 허정(許晶), 무과 허창(許昌)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위패를 모신 연당(蓮堂)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 실록(18년, 1640)
효종 실록(9년, 1658)
현종 실록(2년, 1661)
여지도서(경상도 晉州)
진양지
진양속지
승정원일기
『진주의 문화유산』(진주문화원, 1998)

[집필자]

이지은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2-09-02갈암집의 허동립 묘지명을 참고하여 가계 추가.[수정자:양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