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흔(洪昕)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D64DD754FFFFB1601X0 |
| 자(字) | 백승(伯昇) |
| 호(號) | 문곡(文谷) |
| 생년 | 1601(선조 34) |
| 졸년 | 1653(효종 4)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부계(缶溪) |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상세내용]
홍흔(洪昕)
1601년(선조 34)∼1653년(효종 4). 조선 중기 의병‧학자‧은자(隱者). 자는 백승(伯昇)이고, 호는 문곡(文谷)이다. 본관은 부계(缶溪)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군위(軍威)이다.
부친은 홍명뢰(洪命賚)이다.
수차례 향시에 나아가서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여헌(旅軒) 장현광(張縣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적진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면서 문산(文山)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숭정유민(崇禎遺民)이라 부르며 평생 은거하였다.
유고로 2권 1책의 시문집인 『문곡집(文谷集)』이 전하는데, 문집 가운데 주목할 작품으로 병자호란 후 문산에 은거하면서 읊은 「문곡유거(文谷幽居)」와 성리학의 핵심에 자신의 의견을 붙여서 지은 「성경요어(誠敬要語)」 등이 있다.
부친은 홍명뢰(洪命賚)이다.
수차례 향시에 나아가서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여헌(旅軒) 장현광(張縣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적진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면서 문산(文山)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숭정유민(崇禎遺民)이라 부르며 평생 은거하였다.
유고로 2권 1책의 시문집인 『문곡집(文谷集)』이 전하는데, 문집 가운데 주목할 작품으로 병자호란 후 문산에 은거하면서 읊은 「문곡유거(文谷幽居)」와 성리학의 핵심에 자신의 의견을 붙여서 지은 「성경요어(誠敬要語)」 등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원배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