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흠(郭之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FDC9C0D760B1601X0 |
자(字) | 흠로(欽魯) |
호(號) | 지포(芝浦) |
생년 | 1601(선조 3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곽희태(郭希泰) |

[관련정보]
[상세내용]
곽지흠(郭之欽)
1601년(선조 34)∼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흠로(欽魯), 호는 지포(芝浦).
부친은 곽희태(郭希泰)이다.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왜차접위관(倭差接慰官)이 되어 대마도의 사신을 맞았으며, 이어 지평이 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장령이 되었고, 1659년(현종 즉위) 사간이 되었다.
1662년 정언 권격(權格)과 더불어 윤선도(尹善道)의 상소를 변호하는 조경(趙絅)을 귀양보낼 것을 간곡히 주장하였다. 벼슬은 집의에 이르렀다.
부친은 곽희태(郭希泰)이다.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왜차접위관(倭差接慰官)이 되어 대마도의 사신을 맞았으며, 이어 지평이 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장령이 되었고, 1659년(현종 즉위) 사간이 되었다.
1662년 정언 권격(權格)과 더불어 윤선도(尹善道)의 상소를 변호하는 조경(趙絅)을 귀양보낼 것을 간곡히 주장하였다. 벼슬은 집의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號譜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孝宗實錄
顯宗實錄
號譜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이원근(李元根)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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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