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익(趙廷翼)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815C775B1599X0 |
자(字) | 익지(翼之) |
호(號) | 낙도재(樂道齋) |
시호(諡號) | 충숙(忠肅) |
생년 | 1599(선조 32) |
졸년 | 1637(인조 1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양(平壤) |
활동분야 | 충효열 > 순절인 |
증조부 | 조보(趙溥) |
처 | 이씨(李氏) |
[상세내용]
조정익(趙廷翼)
1599년(선조 32)∼1637년(인조 15). 조선 중기의 순절자.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익지(翼之), 호는 낙도재(樂道齋). 고려의 명신 조인규(趙仁規)의 후예로, 부윤 조보(趙溥)의 증손이며, 병사 조유(趙猷)의 아버지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내 이씨(李氏: 都正 濬의 딸)와 함께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나 청병(淸兵)이 쳐들어와 강화도가 함락되고 말았다. 이에 자살을 기도, 이씨가 먼저 자결하자 아내의 염(殮)을 서둘러 치르고, 그 다음날인 1637년 1월 25일 청병이 몰려오자 낭떠러지에서 투신, 자결하였다.
정조 대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이씨는 정부인(貞夫人)에 봉하여 졌으며, 정문이 세워졌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내 이씨(李氏: 都正 濬의 딸)와 함께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나 청병(淸兵)이 쳐들어와 강화도가 함락되고 말았다. 이에 자살을 기도, 이씨가 먼저 자결하자 아내의 염(殮)을 서둘러 치르고, 그 다음날인 1637년 1월 25일 청병이 몰려오자 낭떠러지에서 투신, 자결하였다.
정조 대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이씨는 정부인(貞夫人)에 봉하여 졌으며, 정문이 세워졌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國朝人物志
國朝人物志
[집필자]
홍순만(洪淳晩)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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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4-23 | 정조실록 44권, 1796년 4월 8일조를 참고하여 "좌승지에 추증되고, 이씨는 숙부인(淑夫人)에 봉하여졌으며"를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이씨는 정부인(貞夫人)에 봉하여 졌으며"로 고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