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항(蔡以恒)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C44C774D56DB1596X0 |
자(字) | 여구(汝久) |
호(號) | 오봉(五峰) |
시호(諡號) | 경헌(景憲) |
생년 | 1596(선조 29) |
졸년 | 1666(현종 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인천(仁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채천서(蔡天瑞) |
모 | 영양남씨(英陽南氏) |
외조부 | 남국신(南國臣) |
출신지 | 함창 |
[상세내용]
채이항(蔡以恒)
1596년(선조 29)∼1666년(현종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여구(汝久), 호는 오봉(五峰). 함창 출신. 부친은 증참의 채천서(蔡天瑞)이며, 모친은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국신(南國臣)의 딸이다.
인조반정 후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 행재소(行在所)로 인조를 찾아가 배알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의병을 모아 경상우병사 민영(閔泳)과 감사 심연(沈演) 등을 도왔으나 화의가 성립되자 향리로 돌아가 대청(對淸)복수책을 상소하였다.
그뒤 척화신으로 청나라의 미움을 사 1640년 김상헌(金尙憲)‧조한영(曺漢英) 등과 함께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3년에 돌아왔다.
1648년 그의 충의를 높이 사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었고, 이어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목천현감‧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소촌찰방(召村察訪)‧군자감주부 등을 역임하고, 1661년(현종 2) 석성현감(石城縣監)이 되어 치적과 진휼(賑恤)에 힘쓴 공으로 포상되었다.
그뒤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거쳐 평시서영(平市署令)에 이르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인조반정 후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 행재소(行在所)로 인조를 찾아가 배알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의병을 모아 경상우병사 민영(閔泳)과 감사 심연(沈演) 등을 도왔으나 화의가 성립되자 향리로 돌아가 대청(對淸)복수책을 상소하였다.
그뒤 척화신으로 청나라의 미움을 사 1640년 김상헌(金尙憲)‧조한영(曺漢英) 등과 함께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3년에 돌아왔다.
1648년 그의 충의를 높이 사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었고, 이어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목천현감‧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소촌찰방(召村察訪)‧군자감주부 등을 역임하고, 1661년(현종 2) 석성현감(石城縣監)이 되어 치적과 진휼(賑恤)에 힘쓴 공으로 포상되었다.
그뒤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거쳐 평시서영(平市署令)에 이르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顯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人物考
顯宗實錄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차문섭(車文燮)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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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