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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익(愼天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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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거(伯擧)
호(號)소은(素隱)
생년1592(선조 25)
졸년1661(현종 2)
시대조선중기
본관거창(居昌)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인(愼諲)
저서『소은유고』

[상세내용]

신천익(愼天翊)
1592년(선조 25)∼1661년(현종 2).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伯擧), 호는 소은(素隱). 진사 신인(愼諲)의 아들이다.

진사시에 합격,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615년 홍문관정자를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는데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사직, 전라남도 영암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홍문관사간원의 요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54년(효종 5)에 다시 나와서 홍문관부제학을 지내고 대사간이조참의가 되었다.

1659년에 당시 이조판서 송시열(宋時烈)이 종2품 관직에 인물이 부족하다 하여 당상관 중에서 등용할 수 있는 네 사람을 추천하였는데, 신천익이 그 중 한 사람으로 이조참판에 서임되고, 이어 한성부우윤에 특제(特除)되었다.

그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한 뒤로는 시정(時政)과 시사(時事)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장과 시부(詩賦)에 능하여 송시열도 찬탄한 바 있으며, 아우 신해익(愼海翊)과 더불어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

그러나 나랏일보다 사사로운 일에 더 힘을 기울였다 하여 당시 선비들 사이에 비난도 적지 않았다. 영암 영보사(永保祠)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소은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靈巖邑誌
朝鮮古今名賢傳

[집필자]

이수건(李樹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