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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량(柳廷亮)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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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룡(子龍)
호(號)소한당(素閒堂)
시호(諡號)효정(孝貞)
생년1591(선조 24)
졸년1663(현종 4)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유열(柳悅)
조부유영경(柳永慶)
정휘옹주(貞徽翁主)
외조부이필(李韠)

[상세내용]

유정량(柳廷亮)
1591년(선조 24)∼1663년(현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룡(子龍), 호는 소한당(素閒堂).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의 손자로, 유열(柳悅)의 아들이며, 모친은 첨지 이필(李韠)의 딸이다.

1604년(선조 37) 14세 때 선조의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와 혼인하여 전창위(全昌尉)에 봉하여졌다.

1612년(광해군 4) 할아버지 유영경의 사건으로 일가가 멸족될 때 전라도 고부에 유배되었다.

1619년 장차 역모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호남 지방에 유포되자 경상도 기장(機張)으로 이배되었다. 여러 해 동안의 귀양살이로 토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여 실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즉시 풀려나와 작위가 회복되어 숭덕대부(崇德大夫)에 승품되고, 여러차례 승진하여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이르러 세훈(世勳)을 물려받고 군(君)에 봉하여졌다.

1646년(인조 24)‧1651년(효종 2)‧1655년에 각각 사은사(謝恩使)진향사(進香使)사은사청나라에 다녀왔고, 도총관에 이르렀다.

글씨에 뛰어났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淸選考

[집필자]

이장희(李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