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朴烶)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BC15C815FFFFB1590X0 |
| 자(字) | 회숙(晦叔) |
| 호(號) | 표암(漂巖) |
| 생년 | 1590(선조 23) |
| 졸년 | 1653(효종 4)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나주(羅州)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박정(朴烶)
1590년(선조 23)∼1653년(효종 4).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자는 회숙(晦叔)이고, 호는 표암(漂巖)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이다.
조부는 박염(朴濂)이고, 부친 낙애(洛厓) 박중윤(朴仲胤)과 모친 김사현(金士賢)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권계(權契)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호양(湖陽) 권익창(權益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7년(인조 5) 식년시 생원 3등 6위로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서 유학(遊學)하였다.
성균관 시절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에 대해 비방한 것을 보고 통문을 돌려 성토하게 하였다. 이후 추천으로 능침랑(陵寢郞)에 임명되었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출정했다가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중에 되돌아 왔다.
1638년(인조 16) 강릉참봉(江陵參奉)에 제수되었지만,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정구(鄭逑) 등의 문집 간행에 참여하였다.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다.
시문집 『표암유고(漂巖遺稿)』를 남겼는데, 부친 박중윤의 유고 『낙애일고(洛厓逸稿)』와 함께 『운재세고(雲齋世稿)』로 간행되었다.
조부는 박염(朴濂)이고, 부친 낙애(洛厓) 박중윤(朴仲胤)과 모친 김사현(金士賢)의 딸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권계(權契)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호양(湖陽) 권익창(權益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7년(인조 5) 식년시 생원 3등 6위로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서 유학(遊學)하였다.
성균관 시절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에 대해 비방한 것을 보고 통문을 돌려 성토하게 하였다. 이후 추천으로 능침랑(陵寢郞)에 임명되었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출정했다가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중에 되돌아 왔다.
1638년(인조 16) 강릉참봉(江陵參奉)에 제수되었지만,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정구(鄭逑) 등의 문집 간행에 참여하였다.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다.
시문집 『표암유고(漂巖遺稿)』를 남겼는데, 부친 박중윤의 유고 『낙애일고(洛厓逸稿)』와 함께 『운재세고(雲齋世稿)』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