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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곤재(黃坤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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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재겸(載謙)
생년1590(선조 23)
졸년1612(광해군 4)
시대조선중기
본관장수(長水)
활동분야학생 > 유생

[상세내용]

황곤재(黃坤載)
1590년(선조 23)∼1612년(광해군 4). 조선 중기 유생. 자는 재겸(載謙)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 익성공(翼成公) 황희지(黃喜之)의 후손으로, 조부는 문정공(文貞公)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이다. 부친은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 증사간원사간(贈司諫院司諫) 겸 춘추관편수관(兼春秋館編修官) 황석(黃奭)과 모친 참판(判官) 이치(李緇)의 딸 증숙인(贈淑人)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황건재(黃乾載)이다. 부인은 별제(別提) 김수인(金守仁)의 딸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을 당해 부친과 부친의 형제들이 왕자를 모시고 회령부(會寧府)로 갔을 때 여종의 등에 업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풀잎의 이슬을 젖처럼 먹으며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자라서는 문장(文章)에 힘써 재주와 영특함을 더해 뛰어났다. 사람됨이 총명하고 밝은 성품으로 책 읽기를 즐겨하여 말 위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말이 다른 집으로 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1610년(광해군 2) 식년시 진사 3등 16위로 합격한 후, 대과 공부에 힘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1남 전주판관(全州判官) 황부(黃裒)를 두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江漢集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