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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염조(金念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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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효수(孝修)
호(號)학음(鶴陰)
생년1589(선조 22)
졸년1652(효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풍산(豊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염조(金念祖)
1589년(선조 22)∼1652년(효종 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효수(孝修)이고, 호는 학음(鶴陰)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김순정(金順貞)이고, 조부는 좌통례(左通禮) 증좌참찬(贈左參贊) 김진(金鎭)이다. 부친은 좌참찬 정헌공(靖憲公) 김수현(金壽賢)이고, 생부는 산음현감(山陰縣監) 증이조참판 김대현(金大賢)이다. 모친은 원인간(元仁幹)의 딸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음직으로 사산감역(四山監役)에 제수되었다가, 1635년(인조 13) 증광시 생원 2등 17위로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과천현감(果川縣監)으로 있던 겨울에 청나라의 침입으로 부친이 남한산성으로 어가를 호위하여 들어가자, 호남(湖南)으로 모친을 모시고 내려가 의병을 모집하려고 하였으나 호응이 없었다. 이에 용주(龍洲) 조경(趙絅)과 함께 관악산(冠岳山)에 들어가 병사를 모집하고 파수(把守)를 의논하며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맹세하였으나, 인조가 이미 청나라에 항복하여 수포로 돌아갔다.

1639년(인조 17) 공조좌랑(工曹佐郞)을 거쳐 정산현감(定山縣監)으로 있을 때, 높은 곳으로 향교를 옮겨 짓고 마을의 우수한 인재를 골라 그 안에 거주케 하여 실력을 키우도록 하니 선비들이 많이 분발하였다. 이어 익위사복시주부(翊衛司僕寺主簿)에 제수되었다가 안산군수(安山郡守)로 가서 공자묘(孔子廟)를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내직으로 들어와 공조정랑(工曹正郞)‧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종친부전적(宗親府典籍) 등을 역임하였다.

묘는 경기도 파주(坡州)에 있다.

[참고문헌]

訥隱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