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응로(安應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48C751B85CB1586X0 |
자(字) | 몽여(夢與) |
호(號) | 취치(醉癡) |
생년 | 1586(선조 1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광주(廣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안묵지(安黙智) |
[관련정보]
[상세내용]
안응로(安應魯)
1586년(선조 19)∼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몽여(夢與), 호는 취치(醉癡). 정랑 안묵지(安黙智)의 아들이다.
1615년(광해군 7)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대교‧설서‧헌납을 거쳐 이조좌랑‧이조정랑‧지평을 지냈다.
1613년 유학(幼學)의 신분으로 진사 이위경(李偉卿) 등과 함께, ①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역적모의, ② 김제남(金悌男)의 토죄(討罪), ③ 폐모론(廢母論: 內作巫蠱 外應逆謀 母道已絶) 등을 내용으로 한 상소를 올려 당시의 여론을 자극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모론의 수창자(首唱者)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 위리안치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1615년(광해군 7)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대교‧설서‧헌납을 거쳐 이조좌랑‧이조정랑‧지평을 지냈다.
1613년 유학(幼學)의 신분으로 진사 이위경(李偉卿) 등과 함께, ①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역적모의, ② 김제남(金悌男)의 토죄(討罪), ③ 폐모론(廢母論: 內作巫蠱 外應逆謀 母道已絶) 등을 내용으로 한 상소를 올려 당시의 여론을 자극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모론의 수창자(首唱者)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 위리안치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癸亥靖社錄
仁祖實錄
癸亥靖社錄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명 : "응로(應魯)"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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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