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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추(金是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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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첨(子瞻)
호(號)단곡(端谷)
생년1580(선조 13)
졸년1640(인조 18)
시대조선중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호국 > 의병
진성이씨(眞城李氏)
처부이순도(李純道)

[상세내용]

김시추(金是樞)
1580년(선조 13)∼1640년(인조 18).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첨(子瞻), 호는 단곡(端谷).

외조부는 유종례이다.

160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유성룡(柳成龍)정구(鄭逑)의 문인이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활약하였다. 병자호란에는 유진장(留鎭將)으로 활약하여 유일로 천거되었다.

어릴 때에 행동이 방정하고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이에 문충공(文忠公)이 “이 아이는 반드시 세상과 더불어 부앙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그가 6세 때에는 문충공이 칼 하나를 주면서, “네가 칼 주는 뜻을 알겠느냐.”고 하였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제수받았으며 금부경력(禁府經歴)에까지 이르렀다.

부인은 숙인(淑人) 진성이씨(眞城李氏)이순도(李純道)의 딸이다.

[참고문헌]

嶺南人物考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