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진(宋希進)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A1D76CC9C4B1580X0 |
자(字) | 퇴지(退之) |
생년 | 1580(선조 13) |
졸년 | 1641(인조 1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은진(恩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송남수(宋柟壽) |
외조부 | 유형필(柳亨弼) |
[관련정보]
[상세내용]
송희진(宋希進)
1580년(선조 13)∼1641년(인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퇴지(退之).
임천군수 송남수(宋柟壽)의 아들이며, 모친은 진주류씨(晉州柳氏[移]) 선무랑 유형필(柳亨弼)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시대의 정국이 혼미했으므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반정 후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고 1628년(인조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에 보임되었고, 그뒤 예조좌랑‧지평‧장령‧직강‧사예‧정언‧헌납‧통례원상례 등 문한직(文翰職)을 주로 역임하였으며, 청하현감을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기사관(記事官)으로서 실록편찬에 참여하였고, 간관으로 재직할 때에는 시폐(時弊)를 바로 잡는 데에 앞장섰다.
1635년에는 대사헌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외척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건의 하였다.
간언으로 재직 때 왕의 뜻에 거슬려 청하현감으로 좌천된 뒤 낙향하였지만 병자호란으로 치욕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을에 망궐위(望闕位)를 설치하여 통곡하였고 그뒤 향리에서 『소학』을 강론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임천군수 송남수(宋柟壽)의 아들이며, 모친은 진주류씨(晉州柳氏[移]) 선무랑 유형필(柳亨弼)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 시대의 정국이 혼미했으므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반정 후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고 1628년(인조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에 보임되었고, 그뒤 예조좌랑‧지평‧장령‧직강‧사예‧정언‧헌납‧통례원상례 등 문한직(文翰職)을 주로 역임하였으며, 청하현감을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기사관(記事官)으로서 실록편찬에 참여하였고, 간관으로 재직할 때에는 시폐(時弊)를 바로 잡는 데에 앞장섰다.
1635년에는 대사헌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외척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건의 하였다.
간언으로 재직 때 왕의 뜻에 거슬려 청하현감으로 좌천된 뒤 낙향하였지만 병자호란으로 치욕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을에 망궐위(望闕位)를 설치하여 통곡하였고 그뒤 향리에서 『소학』을 강론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성명 : "송희진(宋希進)"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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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