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춘(羅茂春)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098BB34CD98B1580X0 |
자(字) | 대년(大年) |
호(號) | 구화(九華) |
호(號) | 기지(耆之) |
생년 | 1580(선조 13) |
졸년 | 1619(광해군 1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나덕용(羅德用) |
조부 | 나율(羅慄) |
[관련정보]
[상세내용]
나무춘(羅茂春)
1580년(선조 13)∼1619년(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대년(大年), 호는 구봉(九峰)‧구화(九華)‧기지(耆之).
조부는 첨추(僉樞) 나율(羅慄)이며, 부친은 나덕용(羅德用)이다.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의 학유(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 등을 지냈다. 같은해 이이첨(李爾瞻)이 유생 이위경(李偉卿)을 시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출소(廢黜疏)를 올리자, 한림(翰林) 엄성(嚴惺)과 함께 이위경을 탄핵하였는데, 양사(兩司)의 반발로 말미암아 관직을 삭탈당하고 나주의 향리로 돌아갔다.
3년 뒤 복직되어 감찰을 지냈으나, 다시 파직되었다. 사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으며, 담양의 구산사(龜山祠)에 제향되었다.
조부는 첨추(僉樞) 나율(羅慄)이며, 부친은 나덕용(羅德用)이다.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의 학유(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 등을 지냈다. 같은해 이이첨(李爾瞻)이 유생 이위경(李偉卿)을 시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출소(廢黜疏)를 올리자, 한림(翰林) 엄성(嚴惺)과 함께 이위경을 탄핵하였는데, 양사(兩司)의 반발로 말미암아 관직을 삭탈당하고 나주의 향리로 돌아갔다.
3년 뒤 복직되어 감찰을 지냈으나, 다시 파직되었다. 사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으며, 담양의 구산사(龜山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晦軒集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晦軒集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명 : "무춘(茂春)"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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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