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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金埴)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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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윤()
자(字)치온(致溫)
호(號)퇴촌(退村)
호(號)청포(淸浦)
호(號)죽서(竹西)
호(號)죽창(竹窓)
생년1579(선조 12)
졸년1662(현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예술‧체육 > 화가
김봉선(金奉先)
조부김시(金禔)
증조부김안로(金安老)

[상세내용]

김식(金埴)
1579년(선조 12)∼1662년(현종 3).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 본관은 연안(延安). 초명은 김윤(金允), 자는 중후(仲厚), 또는 치온(致溫), 호는 퇴촌(退村)청포(淸浦)죽창(竹窓) 혹은 죽서(竹西).

김시(金禔)의 손자이며, 아버지 김봉선(金奉先)은 원래 김안로(金安老)의 삼남인 김휘(金鰴)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작은아버지인 김시의 후사가 없어 양자로 출계했기 때문에 그의 양손자가 되었다.

1606년에 진사가 되었고, 1635년에 원종어진 제작에 참여했으며 숭은전(崇恩殿) 묘례(廟禮)때 일자(一資)가 가해졌다. 벼슬은 찰방을 지냈으며 후년에는 선산(善山)에서 살았다.

그는 산수도 잘 그렸으나, 그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독특한 소그림이다. 조선 중기의 가장 유명한 소그림 전문화가였기 때문에 웬만한 소그림은 모두 그의 작품으로 불리어왔다.

그의 소그림들은 할아버지 김시의 절파화풍(浙派畵風)과 영모화풍(翎毛畵風)을 토대로 간일한 산수를 배경으로 묘사되는 게 상례인데, 음영(陰影)으로 표현된 소의 퉁퉁한 몸이나 엑스자형(X字形)의 주둥이, 달무리진듯 선량한 눈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롭고 따뜻한 그림의 분위기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소그림들은 전형적인 한국적 특색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소그림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색들을 지니고 있다.

대표작으로 「고목우도(枯木牛圖)」와 「영모도」 등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東國文獻
燃藜室記述
熱河日記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韓國繪畵史(安輝濬, 一志社, 1980)
朝鮮中期의 선비畵家 金禔‧金埴(李泰浩, 選美術 21, 1984. 여름호)

[집필자]

안휘준(安輝濬)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