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망(宋英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A1C601B9DDB1578X0 |
자(字) | 자진(子眞) |
생년 | 1578(선조 1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진천(鎭川) |
활동분야 | 관리 |

부 | 송흡(宋潝) |

[상세내용]
송영망(宋英望)
1578년(선조 11)~미상. 조선 중기 관리. 자는 자진(子眞)이다. 본관은 진천(鎭川)이다.
부친은 송흡(宋潝)이다.
1612년(광해군 4)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하였다.
인조반정 때 유생(儒生)의 신분으로 반군에 참여하였다. 1623년(인조 1)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서 김원량(金元亮)‧김자점(金自點)‧심기원(沈器遠)‧심명세(沈命世) 등과 함께 6품직에 임명되었으며, 3등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1626년(인조 4)에는 군자감정(軍資監正)으로 재직 중이었으나, 재물을 취득하기 위해 사사로이 공문서를 보낸 혐의로,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았다. 1627년(인조 5)에는 호위청(扈衛廳)에 매일 입조하여, 공무에 전념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표창을 받기도 하였으며,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어영군(御營軍)을 통솔하여 동관왕묘(東關王廟)에서 진을 치고 반군과 대적하기도 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이후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2년(인조 10)에는 비변사(備邊司)로부터 사사로이 백성을 동원하여 노역을 시켰다는 지적을 받아서, 탄핵을 당하였다.
부친은 송흡(宋潝)이다.
1612년(광해군 4)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하였다.
인조반정 때 유생(儒生)의 신분으로 반군에 참여하였다. 1623년(인조 1)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서 김원량(金元亮)‧김자점(金自點)‧심기원(沈器遠)‧심명세(沈命世) 등과 함께 6품직에 임명되었으며, 3등 공신으로 책록되었다. 1626년(인조 4)에는 군자감정(軍資監正)으로 재직 중이었으나, 재물을 취득하기 위해 사사로이 공문서를 보낸 혐의로,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았다. 1627년(인조 5)에는 호위청(扈衛廳)에 매일 입조하여, 공무에 전념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표창을 받기도 하였으며, 이인거(李仁居)의 반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어영군(御營軍)을 통솔하여 동관왕묘(東關王廟)에서 진을 치고 반군과 대적하기도 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이후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2년(인조 10)에는 비변사(備邊司)로부터 사사로이 백성을 동원하여 노역을 시켰다는 지적을 받아서, 탄핵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仁祖實錄
仁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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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