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李幹)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C774AC04FFFFB1576X0 |
| 자(字) | 공직(公直) |
| 호(號) | 괴암(乖庵) |
| 생년 | 1576(선조 9) |
| 졸년 | 1637(인조 15)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영천(永川) |
| 활동분야 | 학생 > 유생 |


[상세내용]
이간(李幹)
1576년(선조 9)∼1637년(인조 15). 조선 중기 유생‧의병장. 자는 공직(公直)이고, 호는 괴암(乖庵)이다. 본관은 영천(永川)이고,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永川)이며, 출신지는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이다.
부친 종사랑(從仕郞) 이개신(李介臣)과 모친 봉사(奉事) 이연(李璉)의 딸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매암(梅巖) 이숙량(李叔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문인 이산해(李山海)‧정탁(鄭琢)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힘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영천에서 궐기하여 의병을 모아 적군과 맞서 싸우면서 영천성을 수호하였다. 이후 청송으로 이주하여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고 학문에 매진하면서 권익(權翊)‧조형도(趙亨道)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는 식년시 진사 3등 10위로 합격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궐기하여 모은 의병을 이끌고 출정하려고 하였으나, 정묘조약(丁卯條約)이 맺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하였다. 이후 경상북도 경산(慶山) 하양읍(河陽邑)으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다.
임호사(臨湖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괴암선생일고(乖庵先生逸稿)』 3권 1책이 있다.
부친 종사랑(從仕郞) 이개신(李介臣)과 모친 봉사(奉事) 이연(李璉)의 딸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매암(梅巖) 이숙량(李叔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문인 이산해(李山海)‧정탁(鄭琢)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힘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영천에서 궐기하여 의병을 모아 적군과 맞서 싸우면서 영천성을 수호하였다. 이후 청송으로 이주하여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고 학문에 매진하면서 권익(權翊)‧조형도(趙亨道)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는 식년시 진사 3등 10위로 합격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궐기하여 모은 의병을 이끌고 출정하려고 하였으나, 정묘조약(丁卯條約)이 맺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하였다. 이후 경상북도 경산(慶山) 하양읍(河陽邑)으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다.
임호사(臨湖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괴암선생일고(乖庵先生逸稿)』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