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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金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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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옥이(沃而)
호(號)명천(鳴川)
생년1575(선조 8)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도강(道康)
활동분야유생
김대립(金大立)

[상세내용]

김관(金灌)
1575년(선조 8)~미상. 조선 중기 유생. 자는 옥이(沃而)이고, 호는 명천(鳴川)이다. 본관은 도강(道康)(주1)
본관
『도강김씨족보(道康金氏族譜)』를 참고하여 본관을 강진(康津)에서 도강(道康)으로 수정함. 강진은 도강과 탐진(耽津)을 통합한 이름임.
이고, 출생지는 전라북도 태인군(泰仁郡; 현 정읍시(井邑市) 소속으로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을 합친 명칭)이다.

조선 개국원종일등공신(開國原從一等功臣) 충민공(忠敏公) 김회련(金懷鍊)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한정(閒亭) 김약회(金若晦)이고, 조부는 쌍백당(雙栢堂) 김원(金元)이며, 부친은 선무랑(宣務郞)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 김대립(金大立)이다.

1615년(광해군 7)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에 57위로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에 갔을 때, 당시 대북파의 거두 이이첨(李爾瞻)이 도덕군자로 소문난 그를 만나보기 위해 시험장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김관(金灌)은 임해군(臨海君)‧유영경(柳永慶) 등을 폐출시키고 강화부사(江華府使)를 시켜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게 만든 이이첨을 만나고 싶지 않아 그 자리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독서에 전념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1627년(인조 5년) 후금이 쳐들어와서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소모사(召募使) 직을 맡고 있던 문원공(文元公) 사계(沙溪) 김장생을 만나러 갔다. 이때 김장생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七寶面) 무성리(武城里)에 있는 무성서원(武城書院)에 최치원(崔致遠)‧신잠(申潛)‧정극인(丁克仁)‧송세림(宋世琳)‧정언충(鄭彦忠)‧김약묵(金若黙) 등과 함께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2-05-22『도강김씨족보(道康金氏族譜)』를 참고하여 본관을 강진에서 도강으로 수정함.[수정자: 이재옥]
2012-05-31"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 도강백(道康伯) 김회련(金懷鍊)의 후손으로"을 "조선 개국원종일등공신(開國原從一等功臣) 충민공(忠敏公) 김회련(金懷鍊)의 후손으로" 수정함.[수정자: 이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