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융달(南隆達)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B0A8C735B2ECB1565X0 |
| 자(字) | 현언(顯彦) |
| 호(號) | 나재(懶齋) |
| 생년 | 1565(명종 20) |
| 졸년 | 1652(효종 3)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영양(英陽)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남융달(南隆達)
1565년(명종 20)∼1652년(효종 3). 조선 중기 학자‧의병. 자는 현언(顯彦)이고, 호는 나재(懶齋)이다. 본관은 영양(英陽)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남응원(南應元)과 모친 첨정(僉正) 안수(安琇)의 딸 죽계안씨(竹溪安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응하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며 살았으나,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인조반정이 옳지 않다는 명분을 앞세워 후금이 쳐들어오자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에 제수되었다.
슬하에 6남, 남잡(南磼)‧남급(南礏)‧남연(南碝)‧남자(南磁)‧남영(南碤)‧남작(南碏)을 두었다.
1825년(순조 25) 안동 풍산읍(豊山邑)에 있는 봉암서원(鳳巖書院)에 부친 남응원, 둘째 아들 남급, 남급의 아들인 남천한(南天漢)과 함께 배향되었다.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62년에 복원되었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남응원(南應元)과 모친 첨정(僉正) 안수(安琇)의 딸 죽계안씨(竹溪安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응하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며 살았으나,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인조반정이 옳지 않다는 명분을 앞세워 후금이 쳐들어오자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에 제수되었다.
슬하에 6남, 남잡(南磼)‧남급(南礏)‧남연(南碝)‧남자(南磁)‧남영(南碤)‧남작(南碏)을 두었다.
1825년(순조 25) 안동 풍산읍(豊山邑)에 있는 봉암서원(鳳巖書院)에 부친 남응원, 둘째 아들 남급, 남급의 아들인 남천한(南天漢)과 함께 배향되었다.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62년에 복원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이원배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