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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응수(咸應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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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미(士美)
생년1561(명종 16)
졸년1627(인조 5)
시대조선중기
본관양근(楊根)
활동분야무신 > 무신
함영근(咸永根)

[상세내용]

함응수(咸應秀)
1561년(명종 16)∼1627년(인조 5).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양근(楊根). 자는 사미(士美). 영근(永根)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무과에 급제하여 왕을 따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돌아와 수문장이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 명나라가 요동정벌의 원군을 요청하자 팔도도교련관(八道都敎鍊官)이 되어 창성에 거주하였는데, 부원수가 그의 연로함을 알고 돌아가게 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 들어가 동영장(東營將)으로 적과 항전하였다. 방어사(防禦使) 김준(金俊)이 그의 연로함을 보고 피신하기를 종용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선봉에서 용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통감(通鑑)』을 항상 외우고 다녔고, 문사(文辭)와 서예에도 능하였다. 항상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였고, 검소한 생활을 신조로 삼아 자식들에게도 광전식재(廣田殖財)를 업으로 삼지 말라고 가르쳤다.

호조좌랑에 추증되고,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안주 충민사(忠愍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典故大方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