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룡(柳仲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C911B8E1B1558X0 |
자(字) | 여견(汝見) |
호(號) | 어적산인(漁適散人) |
생년 | 1558(명종 13) |
졸년 | 1635(인조 1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문화(文化)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유춘(柳有春) |
모 | 청주경씨(淸州慶氏) |
외조부 | 경지(慶祉) |
저서 | 『어적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중룡(柳仲龍)
1558년(명종 13)∼1635년(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여견(汝見), 호는 어적산인(漁適散人).
부친은 승지 유유춘(柳有春)이며, 모친은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장(部將) 경지(慶祉)의 딸이다.
오건(吳健)의 문인으로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박성(朴惺)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의 진중에서 활약하였고, 다시 의병을 규합하여 우현(牛峴)‧상암(箱巖) 등지에서 왜적을 막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장 곽재우(郭再祐)휘하에 종군하여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전쟁의 계책을 도왔다.
1600년 병과에 급제, 성환찰방‧성현찰방‧전적‧사예‧예조정랑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 4)에 장령을 지내고, 이듬해 금산군수가 되었으나 정치가 점점 문란하여짐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인조반정 뒤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여 홍문관수찬이 되었으며, 1626년(인조 4) 교리를 거쳐 다음해 사성이 되어 치사하였다. 문장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어적집』 3권이 있다.
부친은 승지 유유춘(柳有春)이며, 모친은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장(部將) 경지(慶祉)의 딸이다.
오건(吳健)의 문인으로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박성(朴惺)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의 진중에서 활약하였고, 다시 의병을 규합하여 우현(牛峴)‧상암(箱巖) 등지에서 왜적을 막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장 곽재우(郭再祐)휘하에 종군하여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전쟁의 계책을 도왔다.
1600년 병과에 급제, 성환찰방‧성현찰방‧전적‧사예‧예조정랑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 4)에 장령을 지내고, 이듬해 금산군수가 되었으나 정치가 점점 문란하여짐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인조반정 뒤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여 홍문관수찬이 되었으며, 1626년(인조 4) 교리를 거쳐 다음해 사성이 되어 치사하였다. 문장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어적집』 3권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漁適集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漁適集
[집필자]
이재수(李在琇)
성명 : "유중룡(柳仲龍)"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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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