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천(朴應天)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BC15C751CC9CB1556X0 |
| 자(字) | 경우(景遇) |
| 생년 | 1556(명종 11) |
| 졸년 | 1603(선조 36)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영해(寧海) |
| 활동분야 | 처사(處士) |

| 부 | 박량우(朴良佑) |

[상세내용]
박응천(朴應天)
1556년(명종 11)~1603년(선조 36). 조선 중기 처사(處士). 자는 경우(景遇)이다. 본관은 영해(寧海)이고, 출신지도 경상북도 영해(寧海)이다.
신라 때 충신인 박제상(朴堤上)과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낸 박세통(朴世通)의 후손이며, 부친은 박량우(朴良佑)이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왜적이 영해로 침입해오자 영해향교(寧海鄕校)에 봉안된 오성위판(五聖位版)을 서쪽 등운산(騰雲山)의 깊은 골짜기에 모셔다 놓았다. 이후 8년 동안 향을 올리고 보호하였으며, 임진왜란이 평정된 이후에 위판을 옛 향교에 다시 봉안하였다.
1603년(선조 36)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24년(순조 24)에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박제상(朴堤上)‧박세통(朴世通)과 함께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운계서원(雲溪書院)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신라 때 충신인 박제상(朴堤上)과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낸 박세통(朴世通)의 후손이며, 부친은 박량우(朴良佑)이다.
1592년(선조 25)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왜적이 영해로 침입해오자 영해향교(寧海鄕校)에 봉안된 오성위판(五聖位版)을 서쪽 등운산(騰雲山)의 깊은 골짜기에 모셔다 놓았다. 이후 8년 동안 향을 올리고 보호하였으며, 임진왜란이 평정된 이후에 위판을 옛 향교에 다시 봉안하였다.
1603년(선조 36)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24년(순조 24)에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박제상(朴堤上)‧박세통(朴世通)과 함께 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운계서원(雲溪書院)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참고문헌]
紀年便攷
[집필자]
노인환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