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륜(李光輪)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D11B95CB1546X0 |
자(字) | 중임(仲任) |
시호(諡號) | 충헌(忠憲) |
생년 | 1546(명종 1) |
졸년 | 1592(선조 2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여주(驪州) |
활동분야 | 문신/의병장 |

부 | 이우(李遇) |

[상세내용]
이광륜(李光輪)
1546년(명종 1)∼1592년(선조 25). 조선 중기 문신. 의봉장. 자는 중임(仲任)이다.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병절교위(秉節校尉) 이우(李遇)이다. 동생은 이광복(李光福)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며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參奉)을 내렸다.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조헌(趙憲)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에 참여하였다. 처음 향병 삼백인과 병기를 모았다. 이후 제 2차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여 7백의총에 묻혔다. 관직은 행문소전참봉(行文昭殿參奉)이고, 품계는 선무랑(宣務郞)이다. 집의(執義)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이조판사(吏曹判事)에 가증(加贈)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며 정려(㫌閭)되었다.
아들은 이대숙(李大淑)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며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參奉)을 내렸다.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조헌(趙憲)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에 참여하였다. 처음 향병 삼백인과 병기를 모았다. 이후 제 2차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여 7백의총에 묻혔다. 관직은 행문소전참봉(行文昭殿參奉)이고, 품계는 선무랑(宣務郞)이다. 집의(執義)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이조판사(吏曹判事)에 가증(加贈)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며 정려(㫌閭)되었다.
아들은 이대숙(李大淑)이다.
[참고문헌]
國朝寶鑑
紀年便攷司馬榜目
宣祖實錄
紀年便攷司馬榜目
宣祖實錄
[집필자]
구은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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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