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흥(金復興)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BCF5D765B1546X0 |
자(字) | 경언(景言) |
호(號) | 계곡(谿谷) |
생년 | 1546(명종 1) |
졸년 | 1604(선조 3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순천(順天)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익창(金益彰) |
외조부 | 송세영(宋世英) |
출생지 | 남원 |
저서 | 『계곡유고』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복흥(金復興)
1546년(명종 1)∼1604년(선조 37).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언(景言), 호는 계곡(谿谷). 남원 출생.
부친은 부사정(副司正) 김익창(金益彰)이며, 모친은 합천송씨로 참봉 송세영(宋世英)의 딸이다. 정염(丁焰)의 문인으로서 문장이 뛰어나 14세 때 도시(道試)에서 장원하였다.
1570년(선조 3)에 생원‧진사시에 합격, 별제‧직장의 벼슬을 거쳐 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군량미를 조달하였으며, 명나라 장수 여응종(呂應鍾)과 함께 군사기밀을 의논하는 등 왜적과 싸웠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면서 당시 명성이 높았던 이대유(李大㕀)‧최상중(崔尙重)‧양사형(楊士衡)‧조찬한(趙纘韓) 등과 교유하였다. 남원의 현주서원(玄洲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계곡유고』 5권 1책이 있다.
부친은 부사정(副司正) 김익창(金益彰)이며, 모친은 합천송씨로 참봉 송세영(宋世英)의 딸이다. 정염(丁焰)의 문인으로서 문장이 뛰어나 14세 때 도시(道試)에서 장원하였다.
1570년(선조 3)에 생원‧진사시에 합격, 별제‧직장의 벼슬을 거쳐 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군량미를 조달하였으며, 명나라 장수 여응종(呂應鍾)과 함께 군사기밀을 의논하는 등 왜적과 싸웠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면서 당시 명성이 높았던 이대유(李大㕀)‧최상중(崔尙重)‧양사형(楊士衡)‧조찬한(趙纘韓) 등과 교유하였다. 남원의 현주서원(玄洲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계곡유고』 5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丈巖集(鄭澔)
[집필자]
조기대(趙基大)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