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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李慶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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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수길(秀吉)
호(號)낙촌(駱村)
호(號)학록(鶴麓)
생년1545(인종 1)
졸년1611(광해군 3)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예술‧체육 > 화가
증조부이관(李慣)

[상세내용]

이경윤(李慶胤)
1545년(인종 1)∼1611년(광해군 3). 조선 중기의 사대부 화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길(秀吉), 호는 낙파(駱坡)낙촌(駱村) 또는 학록(鶴麓).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 성종의 11자)의 종증손이다.

서화에 능하였고 동생 이영윤(李英胤)과 두 아들 그리고 서자인 이징(李澄) 모두 그림과 글씨에 능하였다. 학림수(鶴林守)를 제수받았고 뒤에 학림정(鶴林正)에 봉해졌다. 중국에 사절로 2회 다녀왔으며, 임진왜란 때는 왕의 서행(西幸)을 보좌하지 않고 산속으로 피신하였다고 하여 사헌부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30년 연상인 절파풍(浙派風)의 대가 김시(金禔)와 친밀하게 교유하면서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 후기의 남태응(南泰膺)『청죽화사(聽竹畵史)』에서 그의 그림이 고담(枯淡)한 가운데 정취가 있고 거칠고 성근 맛이 하나도 없어 “김시와 비교해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평하였었다.

그리고 윤두서(尹斗緖)는 그의 그림에 대하여 강하고 굳고 우아하고 깨끗하나 협소함이 한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들은 대체로 소경(小景)산수인물화와 동물화들인데 모두 조선 중기 절파화풍의 특징을 보여준다.

소경산수인물화는 최립(崔岦)의 발문과 찬시(贊詩)가 있는 「인물화첩」(호림미술관 소장)이 그의 진작으로 가장 신빙도가 높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산수도」‧「탁족도(濯足圖)」 등이 그의 대표적인 전칭작이다.

동물화에서는 흑백대비의 묵법(墨法)이 강조되고 한국적인 정취가 넘치는 말과 소와 개 그림을 즐겨 그렸으며, 간송미술관에 유작들이 다소 전한다. 김시와 함께 절파화풍의 정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16세기 후반의 조선 중기 화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참고문헌]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韓國繪畵史(安輝濬, 一志社, 1980)
韓國의 美 11―山水畵 上―(安輝濬監修, 中央日報社, 1980)
澗松文華 17―朝鮮王朝翎毛畵―(韓國民族美術硏究所, 1979. 10.)
韓國의 翎毛畵(洪善杓, 國寶 10―繪畵―, 藝耕産業社, 1984)
An Album of Figure and Landscape Painting
Attributed to Yi
kyung-yun(Burglind Jangmann, 三佛金元龍敎授停年退任記念論叢 Ⅱ, 一志社, 1987)

[집필자]

홍선표(洪善杓)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