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공(洪世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C138ACF5B1541X0 |
자(字) | 중안(仲安) |
호(號) | 봉계(鳳溪) |
생년 | 1541(중종 36) |
졸년 | 1598(선조 3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보(洪俌) |
저서 | 『봉계일고』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세공(洪世恭)
1541년(중종 36)∼1598년(선조 3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자는 중안(仲安), 호는 봉계(鳳溪). 군수 홍보(洪俌)의 아들이다.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평안도구황경차관(平安道救荒敬差官)이 되어 영유현감(永柔縣監) 임태(任兌)를 처벌하는 등 민심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워 왕의 신임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조도사(調度使)가 되어 명군(明軍)의 군수조달의 책임을 지고 전진(戰陣)의 상황을 왕에게 수시로 보고하였다. 곧 참의로 승진되어 조도사를 겸하고, 이어 함경도도순찰사가 되어 영흥의 적정을 보고하여 군의 계책을 진언하고, 각 지방에 남은 식량과 들판에 널려 있는 곡물을 거두어들이는 데 전력하였다.
1594년 전라도관찰사로 전주부윤을 겸하여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의 양곡을 조도(調度)하였다.
1596년 좌부승지를 거쳐 우승지‧참찬 등을 역임하고, 정유재란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자 다시 평안도 조도사가 되어 군량조달에 힘쓰던 중 숙환이 재발되어 군중에서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저서로 『봉계일고』가 있다.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평안도구황경차관(平安道救荒敬差官)이 되어 영유현감(永柔縣監) 임태(任兌)를 처벌하는 등 민심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워 왕의 신임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조도사(調度使)가 되어 명군(明軍)의 군수조달의 책임을 지고 전진(戰陣)의 상황을 왕에게 수시로 보고하였다. 곧 참의로 승진되어 조도사를 겸하고, 이어 함경도도순찰사가 되어 영흥의 적정을 보고하여 군의 계책을 진언하고, 각 지방에 남은 식량과 들판에 널려 있는 곡물을 거두어들이는 데 전력하였다.
1594년 전라도관찰사로 전주부윤을 겸하여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의 양곡을 조도(調度)하였다.
1596년 좌부승지를 거쳐 우승지‧참찬 등을 역임하고, 정유재란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자 다시 평안도 조도사가 되어 군량조달에 힘쓰던 중 숙환이 재발되어 군중에서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저서로 『봉계일고』가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燃藜室記述
鳳溪逸稿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燃藜室記述
鳳溪逸稿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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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