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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도(趙宗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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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유(伯由)
호(號)대소헌(大笑軒)
시호(諡號)충의(忠毅)
생년1537(중종 32)
졸년1597(선조 30)
시대조선전기
본관함안(咸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언(趙堰)
외조부강로(姜老)
저서『대소헌집』

[상세내용]

조종도(趙宗道)
1537년(중종 32)∼1597년(선조 3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부친은 참봉 조언(趙堰)이며, 모친은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다. 정두(鄭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천거로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이 되었다.

이때 이황(李滉)의 문하생들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유하였다.

그뒤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장례원사평 등을 역임하고, 1583년(선조 16) 양지현감(陽智縣監)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으며, 1587년 금구현령(金溝縣令)을 역임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무고함이 밝혀져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으로 돌아와 초유사(招諭使) 김성일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모집에 진력하였고, 그해 가을 단성현감을 지냈다.

1596년에는 함양군수가 되었는데, 다음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을 받고 안음현감 곽준(郭䞭)과 함께 의병을 규합, 황석산성(黃石山城)을 수축하고 가족까지 이끌고 들어가 성을 지키면서 가토(加藤淸正)가 인솔한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기개가 높고 해학을 즐겼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안덕암서원(德巖書院), 안의의 황암서원(黃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대소헌집』이 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東儒師友錄
國朝人物考
龍蛇日記
再造藩邦志
春坡堂日月錄
朝野僉載

[집필자]

김석희(金錫禧)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