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춘(金樂春)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B099CD98B1525X0 |
| 자(字) | 태화(泰和) |
| 호(號) | 인백당(忍百堂) |
| 생년 | 1525(중종 20) |
| 졸년 | 1585(선조 19)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순천(順天) |
| 활동분야 | 교육 > 교육가 |

| 부 | 김우행(金雨行) |
| 조부 | 김희윤(金希尹) |
| 외조부 | 김효려(金孝廬) |

[상세내용]
김낙춘(金樂春)
1525년(중종 20)∼1585년(선조 19).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태화(泰和), 호는 인백당(忍百堂).
조부는 김희윤(金希尹)이고 부친은 용궁현감 김우행(金雨行)이며 모친은 광산김씨로, 김효려(金孝廬)의 딸이다.
21세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와 예조좌랑이 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배웠고 내외종(內外從)간인 읍청정(挹淸亭) 김부의(金富儀)와 교유하였다.
만년에는 가은읍 소양동(瀟陽洞)에 영류정(映流亭)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에 힘썼고 후에 소양서원(瀟陽書院)에 제향되었다.
시문집 『인백당일고(忍百堂逸稿)』가 있다.
조부는 김희윤(金希尹)이고 부친은 용궁현감 김우행(金雨行)이며 모친은 광산김씨로, 김효려(金孝廬)의 딸이다.
21세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와 예조좌랑이 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배웠고 내외종(內外從)간인 읍청정(挹淸亭) 김부의(金富儀)와 교유하였다.
만년에는 가은읍 소양동(瀟陽洞)에 영류정(映流亭)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에 힘썼고 후에 소양서원(瀟陽書院)에 제향되었다.
시문집 『인백당일고(忍百堂逸稿)』가 있다.
[참고문헌]
忍百堂逸稿(金樂春)
[집필자]
김은영
성명 : "김악춘(金樂春)"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