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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응규(黃應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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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문(仲文)
호(號)송간(松澗)
생년1518(중종 13)
졸년1598(선조 31)
시대조선전기
본관창원(昌原)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사우(黃士祐)
외조부오수정(吳壽楨)
저서『송간고』

[상세내용]

황응규(黃應奎)
1518년(중종 13)∼1598년(선조 3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문(仲文), 호는 송간(松澗).

부친은 우찬성 황사우(黃士祐)이며, 모친은 오수정(吳壽楨)의 딸이다. 주세붕(周世鵬)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 입학하여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뒤 태학(太學)에서 그 재주를 아껴 추천하여 전함사별제(典艦司別提)가 되고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에 이르렀다.

1569년(선조 2) 52세로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에 임용되고, 호조형조공조정랑좌랑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588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고, 소명이 있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곡을 균량으로 바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1594년 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

또한, 향병대장(鄕兵大將)으로 추대되어 마을사람들에게 의기를 고취하고 장정‧군량 등을 모집하여 출전하였다.

초서(草書)를 잘 썼다. 저서로 『송간고』가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松澗稿

[집필자]

공원영(孔黿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