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현(鄭師賢)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C0ACD604B1508X0 |
| 자(字) | 희고(希古) |
| 생년 | 1508(중종 3) |
| 졸년 | 1545(인종 1)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진양(晉陽) |
| 활동분야 | 기타 > 처사 |


[상세내용]
정사현(鄭師賢)
1508년(중종 3)∼1545년(인종 1).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희고(希古).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배워 경학에 잠심하고 성리를 강구하니 남명이 매부를 삼았다. 나이 아홉 살에 부친의 병이 중해지자 목욕하고 하늘에 기도한 다음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내어 먹였다. 며칠 동안 회생하였다가 상(喪)을 당하자 슬퍼하여 뼈만 남아서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제찬을 직접 지어 바쳤고 장사지낼 때에는 몸에 옷을 끌지 않았고 밤이면 영궤 옆에 엎드렸고 낮이면 묘 앞에 엎드렸으니 길 가던 사람들이 차탄하기를,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상을 행함에 엄함이 이와 같으니 하늘이 낸 효성이 아닌가!” 하였다.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배워 경학에 잠심하고 성리를 강구하니 남명이 매부를 삼았다. 나이 아홉 살에 부친의 병이 중해지자 목욕하고 하늘에 기도한 다음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내어 먹였다. 며칠 동안 회생하였다가 상(喪)을 당하자 슬퍼하여 뼈만 남아서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제찬을 직접 지어 바쳤고 장사지낼 때에는 몸에 옷을 끌지 않았고 밤이면 영궤 옆에 엎드렸고 낮이면 묘 앞에 엎드렸으니 길 가던 사람들이 차탄하기를,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상을 행함에 엄함이 이와 같으니 하늘이 낸 효성이 아닌가!” 하였다.
[참고문헌]
嶺南人物考
[집필자]
이원배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