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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해(鄭汝諧)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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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화(仲和)
호(號)돈재(遯齋)
생년1450(세종 32)
졸년1530(중종 25)
시대조선전기
본관하동(河東)
활동분야학자 > 유생

[상세내용]

정여해(鄭汝諧)
1450년(세종 32)∼1530년(중종 25). 조선 전기 유학자. 자는 중화(仲和)이고, 호는 돈재(遯齋)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출신지는 경상남도 함양(咸陽)이다.

부친은 정지영(鄭之英)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과는 학문적으로 교유하며 격려하였다.

효행으로 천거되어 삭주교수(朔州敎授)를 지냈으며, 1487년(성종 18)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날 때 김굉필의 신원을 상소하는 초고를 만들었다. 그것을 가지고 유배지에서 머물던 김굉필에게 보이자 김굉필이 태워버렸다. 이때 통곡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스스로를 ‘돈재’라고 불렀다.

슬하 1남 진사시에 합격한 정기령(鄭箕齡)을 두었다.

김종직‧김굉필‧김일손‧정여창과 함께 전라남도 화순(和順)의 숭의사(崇義祠)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는 2권의 『돈재집(遯齋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