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조옥곤(趙玉崑)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870C655ACE4U9999X0
자(字)대가(待價)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함열(咸悅)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지(趙智)
출생지전라북도 부안읍(扶安邑) 봉덕리(奉德里)

[상세내용]

조옥곤(趙玉崑)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자는 대가(待價)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전라북도 부안읍(扶安邑) 봉덕리(奉德里)에서 태어났다.

부는 조지(趙智)이다.

1494년(성종 25) 갑인(甲寅) 별시(別試) 병과(丙科) 12위로 급제하였다.

연산군 시절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으며 중종 조에 우부승지(右副承旨),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 공조참판(工曹參判),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호조참판(戶曹參判),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하였다.

조옥곤우의정(右議政) 남곤과 같은 나이이고 그의 아내와는 종형제간이었다. 1522년(중종 17) 12월 그가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재임시 남곤이 쪽지를 보내 한 수령[倅]을 위해 그 성적을 상등으로 해주기를 청하였는데, 조옥곤은 ‘정승이 어찌 그런 청탁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또한 남곤은 그에게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라고 명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여 미움을 샀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국조문과방목
부안군지
중종실록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집필자]

조양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