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준(李弘準)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D64DC900U9999X0 |
| 자(字) | 군식(君式) |
| 호(號) | 눌재(訥齋)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경주(慶州) |
| 활동분야 | 교육 > 교육가 |

| 부 | 이시민(李時敏) |

[상세내용]
이홍준(李弘準)
생졸년 미상.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식(君式), 호는 눌재(訥齋).
부친은 이시민(李時敏)이고 형은 이종준(李宗準: ?-1499)이다. 그는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후진교육에 힘썼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 중형(仲兄)이 화를 당한 후 가족과 함께 영천(永川)의 두암(斗巖)에 은거하여 남전여씨(藍田呂氏)의 향약에 의거하여 교화에 노력하고 그달 초하루에 회강(會講)하니 풍속이 일변(一變)하게 되었다. 중종반정 후 덕행으로 천거되어 조정의 부름이 있었으나 병으로 사양하였다. 1652년(효종 3) 백록리사(栢麓里社)에 제향되었다. 저술로 그의 형 이종준의 시문집과 함께 엮은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가 있다.
부친은 이시민(李時敏)이고 형은 이종준(李宗準: ?-1499)이다. 그는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후진교육에 힘썼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 중형(仲兄)이 화를 당한 후 가족과 함께 영천(永川)의 두암(斗巖)에 은거하여 남전여씨(藍田呂氏)의 향약에 의거하여 교화에 노력하고 그달 초하루에 회강(會講)하니 풍속이 일변(一變)하게 되었다. 중종반정 후 덕행으로 천거되어 조정의 부름이 있었으나 병으로 사양하였다. 1652년(효종 3) 백록리사(栢麓里社)에 제향되었다. 저술로 그의 형 이종준의 시문집과 함께 엮은 『용재눌재양선생유고(慵齋訥齋兩先生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慵齋訥齋兩先生遺稿
燃藜室記述
朝鮮人名辭書
燃藜室記述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김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