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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경일(石擎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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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보(誠甫)
생년1532(중종 27)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충주(忠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석규(石圭)

[상세내용]

석경일(石擎日)
1532년(중종 27)~졸년 미상. 자는 성보(誠甫). 본관은 충주(忠州).

부친 석규(石圭)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재종질(再從姪)로 석지형(石之珩)이 있다.

1564년(명종 19) 갑자(甲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8위로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봉상주부(奉常主簿)를 거쳐 전적(典籍)에 이르렀으며 중학교수(中學敎授)를 겸하였다. 영남(嶺南)의 문관(文官)으로, 성품이 어리석고 정직하여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하루에 백 글자를 정해놓고 반드시 천 번을 읽은 후에야 그쳤다. 10여 년 공부하고 나니,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마음과 눈으로 꿰뚫어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여 명경과에 급제를 하였다.

벼슬을 하던 어느 날 새벽 석경일(石擎日)이 타는 말이 달아났다. 석경일은 급히 일어나는 바람에 첩의 자줏빛 장의(長衣)를 입고서 침모(寢帽)를 쓴 채 말을 찾으러 다녔다. 말은 달려서 중학(中學) 속으로 들어갔는데, 석경일이 중학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날이 새고 말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학리(學吏)가 장의와 바지도 안 입고 맨발인 석경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구경꾼들이 모여들어서는 석경일을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학유(學儒)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세상에 알리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결국 석경일은 이 일 때문에 불우한 생을 살다 죽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大東野乘 朝鮮王朝實錄 朝鮮人名辭書 竹窓閑話 海東人物志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