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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빈길(金贇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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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죽강(竹岡)
시호(諡號)양혜(襄惠)
생년?(미상)
졸년1405(태종 5)
시대조선전기
본관고성(固城)
활동분야무신 > 무신
출신지낙안(樂安)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빈길(金贇吉)
미상∼1405년(태종 5). 호는 죽강(竹岡). 본관은 고성(固城)(주1)
본관
『고성김씨족보(固城金氏族譜)』와 『낙안김씨족보(樂安金氏族譜)』를 참고하여 본관을 추가. 『낙안김씨족보』(병인보) 서문에 의하면 김상택(金相宅)이라는 분이 시조 김수징 이하 12대를 고성으로 본관을 바꾸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양 문중의 송사사건이 되어 있다. 이 선계확인소송은 조선조에서 비롯되어 최근에까지 이르고 있다. 1990년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본관이 고성(固城)으로 확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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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太祖) 때의 무인으로 낙안(樂安) 출신이다. 성품이 충직(忠直)하고 근검(勤儉)하였다.

1394년(태조 3) 전라수군첨절제사(全羅水軍僉節制使)로 있을 때 만호(萬戶) 김윤검(金允劍) 김문발(金文發) 등과 함께 왜적의 배 3척을 섬멸하는 등의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같은 해 투항해 온 왜인이 도망간 일로 인하여 최운해(崔雲海)이구철(李龜鐵)김영렬(金英烈) 등과 함께 국문(鞫問)을 당하였는 데 이때 우정승 김사형(金士衡)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그 죄를 감해 주기를 청하여 얼마 후 유배되고, 모두 수군(水軍)에 다시 편입되었다.

1405년(태종 5)에 전라도수군도절제사가 되었을 때에는 도내(道內)의 요해처(要害處)에다 만호(萬戶)를 두고, 병선(兵船)을 나누어 정박시켰고 또한 여러 섬에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군비를 비축하게 하여 주는 것만을 바라는 폐단을 없애고. 평소 아랫 사람을 대함에도 한치도 소홀함이 없었다. 예로 그가 수군절제사로 있을 때에도 항상 사졸(士卒)들과 더불어 감고(甘苦)를 같이하였고, 또한 도적을 쫓아 행선(行船)할 때에도 분연(奮然)히 몸을 돌보지 않아 군사들이 모두 사력(死力)을 다하였으므로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다. 상을 받으면 항상 군사(軍士)의 공(功)이 있는 자에게 나누어 주었으므로 비록 외진 백성들이라도 그의 은혜을 입었다.

후에 양혜(襄惠)라는 시호를 받았다. 아들이 하나 있으니 김원량(金原亮)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定宗實錄
太宗實錄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권이태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4-03-20『낙안김씨족보』를 참고하여 본관 낙안을 추가하였습니다.[수정자:이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