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韓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5CCC9CFFFFU9999X0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한대순(韓大淳) |
조부 | 한악(韓渥) |
공신호 |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
[상세내용]
한천(韓蕆)
생졸년 미상.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우정승 한악(韓渥)의 손자로, 도첨의사(都僉議事) 한대순(韓大淳)의 아들이다.
1365년(공민왕 14) 전리판서(典理判書)로서 고부(古賦)로 민안인(閔安仁) 등 55인, 십운시(十韻詩)로 임한(林翰) 등 41인을 뽑았으며, 1371년 경상도도순문사가 되었다.
1391년(공양왕 3)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를 거쳐, 이듬해 예문관대제학으로 찬성사 성석린(成石璘) 등과 함께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유배되었으나 뒤에 풀려나와 조선 건국 후 1393년(태조 2) 태조로부터 전조대신(前朝大臣) 71인을 포상하라는 명에 의거,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어 원종공신전 15결과 노비 2명을 받았다.
1400년(정종 2) 권희(權禧) 등과 함께 판삼사사로 치사하였다.
우정승 한악(韓渥)의 손자로, 도첨의사(都僉議事) 한대순(韓大淳)의 아들이다.
1365년(공민왕 14) 전리판서(典理判書)로서 고부(古賦)로 민안인(閔安仁) 등 55인, 십운시(十韻詩)로 임한(林翰) 등 41인을 뽑았으며, 1371년 경상도도순문사가 되었다.
1391년(공양왕 3)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를 거쳐, 이듬해 예문관대제학으로 찬성사 성석린(成石璘) 등과 함께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유배되었으나 뒤에 풀려나와 조선 건국 후 1393년(태조 2) 태조로부터 전조대신(前朝大臣) 71인을 포상하라는 명에 의거,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되어 원종공신전 15결과 노비 2명을 받았다.
1400년(정종 2) 권희(權禧) 등과 함께 판삼사사로 치사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太祖實錄
定宗實錄
張寬開國原從功臣錄券
太祖實錄
定宗實錄
張寬開國原從功臣錄券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