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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겸(林守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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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익지(益之)
호(號)갈곡(葛谷)
호(號)신옹(愼翁)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평택(平澤)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무(林茂)
조부임윤생(林允生)
공신호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상세내용]

임수겸(林守謙)
생졸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주1)
본관
임수겸의 등과 기록이 수록된 모든 방목에는 본관이 안음(安陰)으로 되어 있다. 씨족원류에도 이안임씨(利安林氏)에 임수겸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안의 별칭으로 안음, 평택 등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안임씨인 임견미(林堅味)에 대하여 고려사 열전에는 평택인(平澤人)이라고 나온다. 이를 토대로 안음임씨는 평택임씨(平澤林氏)에 속하는 별파(別派)로 보고 안음을 평택으로 고친다.
. 자는 익지(益之), 호는 갈곡(葛谷)신옹(愼翁).

임윤생(林允生)의 손자이며, 임무(林茂)의 아들이다.

1447년(세종 29)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정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임되었고, 1455년(단종 3) 우정언을 거쳐 1457년(세조 3)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녹훈(錄勳)되었다.

1466년에 사예로서 사성 주백손(朱白孫) 등 8인과 함께 학술이 정교하여 성균관‧종학‧사학 등에서 교회(敎誨)의 직임을 맡아 학문을 발흥시켰다. 부제학을 거쳐 1471년(성종 2) 동지성균관사에 올라 3계급을 초월하여 승진, 임용됨에 따라 대사헌 김지경(金之慶)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478년 성균관동지사로 있을 때 태만하여 후학양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이조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1482년 외방으로 해직되었으면서도 호군의 직무를 맡아 녹봉을 받고 있다는 성균관 생원 권수평(權守平) 등의 탄핵을 받았다.

[참고문헌]

端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2-07-17본관 안음을 평택으로 함. 안음(安陰)은 평택의 옛 명칭임.[수정자:양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