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상(李興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765C0C1D1465X0 |
자(字) | 자연(子衍) |
시호(諡號) | 양희(襄僖) |
생년 | ?(미상) |
졸년 | 1465(세조 1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공신호 | 정난공신(靖難功臣)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흥상(李興商)
미상∼1465년(세조 1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연(子衍).
음직으로 행수(行首)에 보직, 여러 벼슬을 거쳐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당시에 의금부진무(義禁府鎭撫)로서 수양대군의 지시를 받고 김종서(金宗瑞)의 집에 가서, 김종서와 그 아들 승벽(承璧)을 찾아내어 목을 베었다. 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정되고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1454년에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고, 1455년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양희(襄僖)이다.
음직으로 행수(行首)에 보직, 여러 벼슬을 거쳐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당시에 의금부진무(義禁府鎭撫)로서 수양대군의 지시를 받고 김종서(金宗瑞)의 집에 가서, 김종서와 그 아들 승벽(承璧)을 찾아내어 목을 베었다. 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정되고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1454년에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고, 1455년 중추원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양희(襄僖)이다.
[참고문헌]
端宗實錄
世祖實錄
世祖實錄
[집필자]
이재호(李載浩)
봉호 : "계림군(雞林君)"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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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