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림(李霖)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B9BCFFFFB1501X0 |
자(字) | 중망(仲望) |
생년 | 1501(연산군 7) |
졸년 | 1546(명종 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함안(咸安)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세응(李世應) |
조부 | 이계통(李季通) |
외조부 | 김미(金楣)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림(李霖)
1501년(연산군 7)∼1546년(명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중망(仲望).
이계통(李季通)의 손자로, 한성부좌윤 이세응(李世應)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미(金楣)의 딸이다.
1519년(중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152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를 비롯하여 정자‧승정원박사를 거쳐, 부수찬에 이르렀다.
성격이 강직하고 효성이 지극하며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으로, 이조정랑 재임시에는 사간원으로부터 무고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대사간 재임시에는 동궁(東宮)에 불이 났는데, 윤원형(尹元衡)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여론이 분분하자 임금의 총애가 한쪽으로 치우쳐 일어난 일이라는 소를 올려 윤원형 일파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문장 역시 뛰어나 1541년 동지사(冬至使) 허자(許磁)와 함께 진위사(進慰使)로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545년(인종 1) 병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윤임(尹任)‧유관(柳灌)과 연루되었다는 윤원형 일파로부터의 모함을 받아 곤장을 맞고 의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사사(賜死)되었으나 뒤에 복직되었다.
이계통(李季通)의 손자로, 한성부좌윤 이세응(李世應)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미(金楣)의 딸이다.
1519년(중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152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를 비롯하여 정자‧승정원박사를 거쳐, 부수찬에 이르렀다.
성격이 강직하고 효성이 지극하며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으로, 이조정랑 재임시에는 사간원으로부터 무고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대사간 재임시에는 동궁(東宮)에 불이 났는데, 윤원형(尹元衡)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여론이 분분하자 임금의 총애가 한쪽으로 치우쳐 일어난 일이라는 소를 올려 윤원형 일파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문장 역시 뛰어나 1541년 동지사(冬至使) 허자(許磁)와 함께 진위사(進慰使)로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545년(인종 1) 병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명종이 즉위하면서 윤임(尹任)‧유관(柳灌)과 연루되었다는 윤원형 일파로부터의 모함을 받아 곤장을 맞고 의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사사(賜死)되었으나 뒤에 복직되었다.
[참고문헌]
仁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人物志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國朝人物志
[집필자]
원유한(元裕漢)
명 : "림(霖)"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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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