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元肅)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6D0C219FFFFD1425X0 |
생년 | ?(미상) |
졸년 | 1425(세종 7)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원주(原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원도(元道) |
[상세내용]
원숙(元肅)
미상∼1425년(세종 7).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원도(元道)의 아들이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고, 좌우대언(左右代言)을 거쳐 1418년 집현전 직제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1)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태종 때 설치된 신문고(申聞鼓)가 남용되는 폐단을 지적, 그 철폐를 주장하였다.
1421년 의금부제조‧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면서 태상왕봉숭도감제조(太上王封崇都監提調)‧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를 담당하였다.
그뒤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하며 관기확립에 힘썼으나, 1424년 뇌물수수의 혐의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인수부윤(仁壽府尹)에 복직되었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고, 좌우대언(左右代言)을 거쳐 1418년 집현전 직제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1)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태종 때 설치된 신문고(申聞鼓)가 남용되는 폐단을 지적, 그 철폐를 주장하였다.
1421년 의금부제조‧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면서 태상왕봉숭도감제조(太上王封崇都監提調)‧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를 담당하였다.
그뒤 사헌부 대사헌 등을 역임하며 관기확립에 힘썼으나, 1424년 뇌물수수의 혐의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인수부윤(仁壽府尹)에 복직되었다.
[참고문헌]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世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최완기(崔完基)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