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언(禹善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6B0C120C5B8U9999X0 |
자(字) | 자용(子容) |
호(號) | 풍애(楓崖)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단양(丹陽)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우공(禹貢) |
[상세내용]
우선언(禹善言)
생졸년 미상. 조선 초기의 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덕부(德父), 호는 풍애(楓崖). 단성군(丹城君) 우공(禹貢)의 아들이다.
4대사화가 지난 뒤에 노장의 학풍을 좋아하여 권세와 명예의 세계를 천하게 보는 초속적(超俗的)인 청담파(淸談派)의 한 사람이었다.
1481년(성종 12)에 영남으로 김종직(金宗直)을 찾아가 자용(子容)이라는 자까지 받았다.
1482년 남효온(南孝溫)‧홍유손(洪裕孫) 등과 일종의 동지회를 조직하고, 동대문 밖 죽림에 모여 시가와 담론으로 시사(時事)를 비판하며, 자신을 진나라의 죽림칠현에 비유하다가 1498년(연산군 4) 체포되어 갑산으로 유배되고, 노복이 되었다.
4대사화가 지난 뒤에 노장의 학풍을 좋아하여 권세와 명예의 세계를 천하게 보는 초속적(超俗的)인 청담파(淸談派)의 한 사람이었다.
1481년(성종 12)에 영남으로 김종직(金宗直)을 찾아가 자용(子容)이라는 자까지 받았다.
1482년 남효온(南孝溫)‧홍유손(洪裕孫) 등과 일종의 동지회를 조직하고, 동대문 밖 죽림에 모여 시가와 담론으로 시사(時事)를 비판하며, 자신을 진나라의 죽림칠현에 비유하다가 1498년(연산군 4) 체포되어 갑산으로 유배되고, 노복이 되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秋江集
師友名行錄
秋江集
師友名行錄
[집필자]
이종호(李棕浩)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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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