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각(李民覺)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BFCAC01B1535X0 |
자(字) | 지윤(志尹) |
호(號) | 사병(四屛) |
생년 | 1535(중종 3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광주(廣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홍(李洪) |
조부 | 이약빙(李若氷)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민각(李民覺)
1535년(중종 30)∼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지윤(志尹), 호는 사병(四屛). 공조참의 이홍(李洪)의 아들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1556년(명종 11)의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561년 강원도도사가 된 이래 오랫동안 외직을 역임하였다.
1566년 풍덕군수로서 이 군의 민폐를 열거하면서 국가행정전반에 걸친 개혁을 요구하는 장문의 소를 올렸다.
1576년(선조 9)일시 사성이 되었으나 곧 외직에 나갔고, 임진왜란중에는 안주‧양주의 목사를 역임하다가 1598년 호조참의가 되어 전라도에 파견되어 군량미조달에 공을 세웠다.
기묘사림파 이약빙(李若氷)의 손자인 관계로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외직으로만 돌아 중용되지 못하였으나 지방 통치에서 민심을 얻어 명성이 높았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1556년(명종 11)의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561년 강원도도사가 된 이래 오랫동안 외직을 역임하였다.
1566년 풍덕군수로서 이 군의 민폐를 열거하면서 국가행정전반에 걸친 개혁을 요구하는 장문의 소를 올렸다.
1576년(선조 9)일시 사성이 되었으나 곧 외직에 나갔고, 임진왜란중에는 안주‧양주의 목사를 역임하다가 1598년 호조참의가 되어 전라도에 파견되어 군량미조달에 공을 세웠다.
기묘사림파 이약빙(李若氷)의 손자인 관계로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외직으로만 돌아 중용되지 못하였으나 지방 통치에서 민심을 얻어 명성이 높았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己卯錄
燃藜室記述
宣祖實錄
國朝榜目
己卯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명 : "민각(民覺)"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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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