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기(楊士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91C0ACAE30B1531X0 |
자(字) | 응우(應遇) |
호(號) | 죽재(竹齋) |
생년 | 1531(중종 26) |
졸년 | 1586(선조 19)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양희수(楊希洙) |
[관련정보]
[상세내용]
양사기(楊士奇)
1531년(중종 26)∼1586년(선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우(應遇), 호는 죽재(竹齋).
부친은 돈녕주부(敦寧主簿) 양희수(楊希洙)이며, 양사언(楊士彦)의 아우이다.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호조좌랑을 거쳐 원주‧부평 등 7읍(邑)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청백(淸白)하여 칭송을 받았다. 선조대왕이 등극한 뒤 상소를 올려 외적의 침범에 대한 방어대책을 진언했는데 과연 뒷날 그 예언이 맞아들었다.
1586년(선조 19) 병으로 앓아눕게 되자 스스로 죽을 날을 점쳤는데, 틀림이 없이 그날에 나이 56세로 죽었다.
그는 시에도 뛰어났으며, 형 양사준(楊士俊)‧양사언 등 세 형제가 모두 대과에 급제하고 문필에 뛰어나 세상에 평판이 높았다.
부친은 돈녕주부(敦寧主簿) 양희수(楊希洙)이며, 양사언(楊士彦)의 아우이다.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호조좌랑을 거쳐 원주‧부평 등 7읍(邑)의 수령(守令)을 역임하였다.
가는 곳마다 청백(淸白)하여 칭송을 받았다. 선조대왕이 등극한 뒤 상소를 올려 외적의 침범에 대한 방어대책을 진언했는데 과연 뒷날 그 예언이 맞아들었다.
1586년(선조 19) 병으로 앓아눕게 되자 스스로 죽을 날을 점쳤는데, 틀림이 없이 그날에 나이 56세로 죽었다.
그는 시에도 뛰어났으며, 형 양사준(楊士俊)‧양사언 등 세 형제가 모두 대과에 급제하고 문필에 뛰어나 세상에 평판이 높았다.
[참고문헌]
國朝人物志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홍순만(洪淳晩)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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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