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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복(林復)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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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희인(希仁)
호(號)풍암(楓巖)
생년1521(중종 16)
졸년1576(선조 9)
시대조선전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붕(林鵬)
조부임평(林枰)
외조부이종의(李宗義)

[상세내용]

임복(林復)
1521년(중종 16)∼1576년(선조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희인(希仁), 호는 풍암(楓巖).

임평(林枰)의 손자로, 승지 임붕(林鵬)의 아들이며, 모친은 이종의(李宗義)의 딸이다.

1540년(중종 35) 사마시를 거쳐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등용되었다가 이듬해 양재역(良才驛)의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에 유배되었다.

1551년 순회세자(順懷世子)의 탄생으로 특사령이 내려져 고향에 돌아갔다가 선조 초기에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무고를 받아 취임하지 못하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기상이 높았으며, 왕래하는 벗들은 모두 당대의 일류명사들이었다.

특히, 윤결(尹潔)이운손(李雲孫)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이에 개의하지 않고 산과 호수를 찾아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하였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