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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년(尹春年)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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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언구(彦久)
호(號)창주(滄洲)
생년1514(중종 9)
졸년1567(명종 22)
시대조선전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안인(尹安仁)

[상세내용]

윤춘년(尹春年)
1514년(중종 9)∼1567년(명종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언구(彦久), 호는 학음(學音)창주(滄洲). 이조참판 윤안인(尹安仁)의 아들이다.

1534년(중종 29) 생원이 되고, 1543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문한직(文翰職)을 역임하다가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친족인 소윤 윤원형(尹元衡)에게 아부하여 대윤일파의 제거에 앞장섰고, 다음해에는 병조좌랑이 되어 윤원로(尹元老) 제거에 크게 노력하였다. 이를 계기로 윤원형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이후 급속히 출세하게 되었는데, 이조정랑장령교리 등을 거쳐 1553년 대사간에 발탁되었다.

2년 뒤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나 윤원형의 서얼허통론(庶孼許通論)을 공박하지 못하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1558년 동지 겸 주청사(冬至兼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서 이조판서가 되었다.

1565년 예조판서로 있을 때 윤원형이 제거되자 파직당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성격이 경박하고 자부심이 강하여 일찍부터 대학자로 자처하는 등 공명심은 많았으나, 주색을 즐기지 않고 비교적 청렴‧결백하였다고 하며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典故大方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