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헌(咸軒)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68D5CCFFFFB1508X0 |
자(字) | 가중(可中) |
호(號) | 칠봉(七峰) |
생년 | 1508(중종 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강릉(江陵)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함좌무(咸佐武) |
저서 | 『칠봉문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함헌(咸軒)
1508년(중종 3)∼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가중(可中), 호는 칠봉(七峰). 개국공신 함부림(咸傅霖)의 4대손으로, 부호군 함좌무(咸佐武)의 아들이다.
1534년(중종 29)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간성군수가 되었다.
1552년(명종 7)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있을 때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 서울인 북경(北京)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이천부사가 되었다.
1562년 삼척부사를 지냈으며, 재임중 관기를 확립하고 부민(府民)을 구휼하여 치적을 남겼다.
만년에는 학풍의 퇴폐를 통탄하고 강릉에 오봉서원(五峰書院)을 짓고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올 때 가져온 공자(孔子)의 진상을 비치하여 추모하면서 후진을 가르쳤으며, 이황(李滉)‧정광필(鄭光弼)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칠봉문집』 1책이 있다.
1534년(중종 29)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간성군수가 되었다.
1552년(명종 7)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있을 때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 서울인 북경(北京)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이천부사가 되었다.
1562년 삼척부사를 지냈으며, 재임중 관기를 확립하고 부민(府民)을 구휼하여 치적을 남겼다.
만년에는 학풍의 퇴폐를 통탄하고 강릉에 오봉서원(五峰書院)을 짓고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올 때 가져온 공자(孔子)의 진상을 비치하여 추모하면서 후진을 가르쳤으며, 이황(李滉)‧정광필(鄭光弼)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칠봉문집』 1책이 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七峰咸先生文集
廣瀨集
國朝榜目
七峰咸先生文集
廣瀨集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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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