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렴(鄭𥖝)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B834FFFFB1506X0 |
자(字) | 사결(士潔) |
호(號) | 북창(北窓) |
시호(諡號) | 장혜(章惠) |
생년 | 1506(중종 1) |
졸년 | 1549(명종 4)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온양(溫陽) |
활동분야 | 의료 > 의관 |
부 | 정순붕(鄭順鵬) |
저서 | 『정북창방(鄭北窓方)』 |
[상세내용]
정렴(鄭𥖝)
1506년(중종 1)∼1549년(명종 4). 조선시대 중종 때의 유의(儒醫). 자는 사결(士潔), 호는 북창(北窓). 본관은 온양(溫陽)(주1)
.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정순붕(鄭順鵬)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어려서부터 천문‧지리‧의서‧복서(卜筮) 등에 두루 능통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약의 이치에 밝았는데, 1544년 왕의 병환에 약을 짓기 위하여 내의원제조들의 추천을 받아 입진(入診)하기도 하였다.
포천현감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가 일상경험한 처방을 모아 편찬한 것이라는 『정북창방(鄭北窓方)』이 있었으나 유실되었다.
이 책은 양예수(楊禮壽)가 지은 『의림촬요(醫林撮要)』에 인용되어 있다.
본관 |
부 정순붕의 문과방목을 참고하여 본관은 온양(溫陽)으로 추가. |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정순붕(鄭順鵬)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어려서부터 천문‧지리‧의서‧복서(卜筮) 등에 두루 능통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약의 이치에 밝았는데, 1544년 왕의 병환에 약을 짓기 위하여 내의원제조들의 추천을 받아 입진(入診)하기도 하였다.
포천현감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가 일상경험한 처방을 모아 편찬한 것이라는 『정북창방(鄭北窓方)』이 있었으나 유실되었다.
이 책은 양예수(楊禮壽)가 지은 『의림촬요(醫林撮要)』에 인용되어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醫林撮要
韓國醫學史(金斗鍾, 探求堂, 1979)
韓醫藥書攷(金信根, 서울大學校出版部, 1987)
醫林撮要
韓國醫學史(金斗鍾, 探求堂, 1979)
韓醫藥書攷(金信根, 서울大學校出版部, 1987)
[집필자]
김쾌정(金夬正)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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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