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암(金泰巖){1}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0DCC554B1477X0 |
자(字) | 탁이(卓爾) |
호(號) | 희암(希菴) |
생년 | 1477(성종 8) |
졸년 | 1554(명종 9)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보은(報恩)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조양(金調陽) |
[상세내용]
김태암(金泰巖)
1477년(성종 8)∼1554년(명종 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보은(報恩). 자는 탁이(卓爾), 호는 희암(希菴).
부친은 군수 김조양(金調陽)이다.
어려서부터 기품이 뛰어났으며 몸이 건장하였다. 유학자로 널리 알려졌고 김정(金淨)과 교우가 두터웠다. 조정의 여러 사람의 천거를 받아 연원찰방(連原察訪)을 제수받고 청렴하고 간결한 정치를 수행하였다.
1519년(중종 14) 훈구재상(勳舊宰相)이 젊은 선비들을 몰아내는 기묘사화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죽었다.
부친은 군수 김조양(金調陽)이다.
어려서부터 기품이 뛰어났으며 몸이 건장하였다. 유학자로 널리 알려졌고 김정(金淨)과 교우가 두터웠다. 조정의 여러 사람의 천거를 받아 연원찰방(連原察訪)을 제수받고 청렴하고 간결한 정치를 수행하였다.
1519년(중종 14) 훈구재상(勳舊宰相)이 젊은 선비들을 몰아내는 기묘사화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乙卯錄補遺
乙卯錄補遺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성명 : "김태암(金泰巖)"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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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